[문예마당] 시위대의 고함만이 먹히는 나라
열여섯 살은 넘었지만 이팔청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젊디젊은 나이 스물다섯 살에 올케는 ‘전쟁 과부’가 되었다. 세 살, 한 살짜리 어린 두 딸과 어떻게 나날을 버티어 나갈 엄두를 낼 수 있었을까? 나는 그때의 올케 모습을 기억하지 못한다. 내 기억은 그때, 폭격으로 파괴된 괴물 같은 건물들,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곤 하나도 보이지 않던 골목길, 끝까지 타지 못한 나무가 때때로 부는 바람을 타고 떠다니던 동네, 추워도 너무 추워서 때 묻은 낡은 회색 담요를 머리까지 뒤집어썼던 아편쟁이 아줌마가 전부다. 실상 이 기억은 식구들한테 들어서 내가 상상으로 그려 본 풍경인지, 내가 직접 보았던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이런 애매모호한 잿빛 기억 가운데 잊히지 않는 역사적인 사건이 있다. 바로 올케가 벌였던 용감한 데모였다. 그녀는 ‘전쟁 과부’로 딱지가 붙은 같은 또래의 여인들과 함께 한동안 몰려다녔다. 이 여인들이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소통하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전쟁 전에는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가 아니었던 그들은 ‘전쟁 과부’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동지가 되었다. 그들에게는 슬픔이나 절망에 젖을 여유가 없었다. 살아야 했다. 일제 강점기 억압받던 시절에 고교생이었던 대한민국의 이 여인들은 정치인들의 눈길을 끌지 못했다. 한 번은 이승만 대통령의 행선지를 알아내고 어느 지점에서 그를 기다렸다고 한다. 대통령의 리무진이 경호대의 삼엄한 경호를 받으며 서서히 움직이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기다란 리무진 안에 등을 뒤로 기대고 앉아 있는 이승만 박사의 모습이 보인다. 전쟁 과부들은 팔을 벌리고, 서로 강강술래 하듯이 자동차를 둘러싼다. 앞길이 막히고, 자동차는 설 수밖에 없다. 이승만 대통령은 전쟁미망인들에 대한 이슈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시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여인들의 울부짖음이 들리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젊은 그들이 대통령의 리무진을 가로막기 이전에, 한국 국민은, 정치인들은 왜 그들을 보지 못했을까? 아비규환 속에서야 비로소 절망의 가쁜 숨소리, 가슴을 치는 신음이 들렸을까? 한국은 건국 이래 처음으로 ‘군인 사망 급여금 규정’을 만들었다. 올케가 길거리로 뛰어나가 데모할 수밖에 없었던 그때나,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된 지금이나 한국은 국민의 목소리를 데모하는 고함 속에서만 듣는 것 같다. 때로는 정치인들조차 자신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길에 나서서 데모하고 외치기도 한다. 올여름 한국은 엄청난 찜통더위를 경험했다. 그런데 그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한 여인이 외로운 시위를 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도대체, 왜? 그 여인의 이름은 김한나. 나의 올케가 육이오 전쟁 때 겪었던 것처럼 그녀도 20대 청춘에 ‘전쟁 과부’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부터 20여 년 전이었다. 한국은 평화의 나라지만 엄연히 휴전 중인 국가다. 그러므로 아직 징병제도가 있고 군인들이 휴전선을 지키고 있다. 그녀의 남편인 한상국 중사와 관련된 외로운 시위의 사연은 이렇다. 휴전 후, 거의 반세기가 지난 1999년, 2002년 두 차례에 걸쳐 연평도 인근에서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북한 경비정과 대한민국의 해군 함정 간에 해상 전투가 있었다. 두 번째 ‘연평해전’에서 그녀의 남편, 한상국 중사가 전사했다고 한다. 연평도는 육이오 전쟁 이후 황해도 일부 지역을 북한에 빼앗기게 되면서, 경기도에 편입됐다가 지금은 인천광역시에 속한다. 1914년부터 현재까지 다섯 번이나 행정 구역 변화를 겪은 희귀한 역사가 있다. 서해안 최북단에 있어서 인천항에서는 120㎞나 떨어져 있다. 반면 북한의 강령 반도에서는 12km 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지리적 이유로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북방한계선을 넘어오기 쉬운 곳이므로 군이 상주하며 지키고 있다. 다시 외로운 시위를 하는 여인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한 중사는 전사 후 상사로 진급은 됐지만 가족에게는 중사 연금이 지급된다고 한다. 그녀는 “국회의원님들 하루빨리 공무원인사법 만들어 나라와 국민 지키는 군인, 경찰, 소방관을 예우해 주세요!”라고 호소하고 있다. 중사와 상사의 연금 차이는 크지 않을 것이지만, 계급을 지켜주는 것은 일종의 예의라 볼 수 있다. 그녀는 군인사법과 공무원 재해 보상법 개정안을 확정해 ‘제복 입은 사람이 존경과 예우를 받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한국도 제복 입은 군인, 경찰, 소방관들을 예우해 주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는 항공기 등에 탑승할 때 노인, 신체장애인, 어린이가 일차고 바로 다음으로 군복을 입은 군인들을 탑승시킨다. 그들에게 나라를 지켜줘 고맙다는 방송과 함께 말이다. 참 멋있다. 피켓을 들고, 뙤약볕에서 외롭게 혼자 시위하는 한상국 상사의 전쟁 미망인 김한나 씨를 응원한다. 우리 모두 응원해야 한다. 더는 시위를 해야만 하고, 아픔을 호소해야만 하게 하면 안 된다. 이유는 말하면 잔소리이다. 류 모니카 / 수필가문예마당 시위대 나라 전쟁 과부들 육이오 전쟁 이승만 대통령